술을 덜 마시는 사회, 시장의 숫자가 보여준다
유명 연예인이 자신의 이름을 내건 술을 선보이고, 공항이나 편의점에서 대대적인 광고를 하는 모습은 이제 낯설지 않다. 방탄소년단 진이 참여한 아이긴을 비롯해 성시경의 경탁주와 경소주 등은 출시 때마다 큰 관심을 모았다. 방송과 영상 플랫폼에서도 유명인들이 술을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콘텐츠가 꾸준히 만들어지고 있다.
하지만 눈에 띄는 광고와 화제성이 실제 시장의 회복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 주류시장의 전체 규모는 줄어드는 흐름이고, 주요 업체들의 매출도 압박을 받고 있다. 인기 제품 몇 가지가 주목받더라도 술을 마시는 사람과 마시는 양이 함께 감소한다면 업계 전반의 하락을 되돌리기는 어렵다.
핵심은 유명인 브랜드의 화제성이 아니라, 술을 덜 마시는 소비 변화가 장기적인 시장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다.
국세청 집계에 따르면 한국의 2025년 주류 출고량은 약 298만8천㎘였다. 출고량은 제조사가 시장에 내보낸 술의 양을 뜻하며, 연간 수치가 300만㎘ 아래로 떨어진 것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이후 27년 만이다.
대기업부터 지역 주류사까지 실적 부담
시장 위축은 대기업 실적에서도 확인된다. 국내 주류업계 1위인 하이트진로의 2026년 상반기 매출은 약 1조2천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4% 감소했다. 2025년에도 연간 매출이 줄었던 데 이어 감소 흐름이 이어진 셈이다.
롯데칠성음료의 주류사업 부문은 2026년 상반기 매출이 전년보다 2% 증가했다. 다만 앞선 해에 매출이 7% 감소한 뒤 나타난 변화여서, 이를 뚜렷한 회복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실적을 비교할 때는 직전 해의 하락 폭이 컸던 데 따른 기저효과(비교 대상이 유난히 낮아 증가율이 커 보이는 현상)도 함께 살펴야 한다.
지역 기반 주류업체들은 경쟁 압력이 더 크다. 지역 술을 일정 비율 구매하도록 했던 제도가 폐지된 뒤 전국 단위 업체와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향토 소주 제조사들은 시장 점유율을 지키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 부산의 대선주조는 2025년 매출이 전년보다 15% 감소했다.
- 경남의 무학은 5%, 대구·경북의 금복주는 9% 매출이 줄었다.
- 충청의 선양소주와 호남의 보해양조는 각각 9%, 3% 증가했다.
일부 지역 업체의 매출이 늘었지만, 두 회사의 연간 매출 증가분을 합쳐도 약 67억원에 그쳤다. 개별 기업의 선전만으로 산업 전반의 축소 흐름을 뒤집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세계 주류업계도 비슷한 압박
주류 소비 둔화는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버드와이저와 스텔라, 카스 등을 보유한 세계 최대 맥주업체 안호이저부시인베브의 2026년 상반기 보고서에서는 전 세계 맥주 출하량이 전년보다 0.3% 증가하는 데 그쳤다. 맥주 수요가 약해진 가운데 무알코올 맥주가 성장해 전체 판매량을 보완했다.
조니워커로 알려진 위스키 업체 디아지오는 2026 회계연도 잠정 실적에서 순매출이 3% 감소했다고 밝혔다. 일본 산토리홀딩스는 주류 부문 상반기 매출이 0.2%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25% 감소했다. 매출이 소폭 늘어도 비용이나 수익성 악화로 이익이 크게 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건강을 위한 선택이 소비 습관을 바꾼다
술을 덜 마시는 이유를 인구 감소나 경기 침체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건강과 생활의 균형을 중시하는 태도가 넓어지면서, 음주를 당연한 여가나 친교 방식으로 여기지 않는 사람이 늘고 있다. 특히 젊은 세대에게 건강관리는 무조건 참고 견디는 일이 아니라 일상에서 즐겁게 이어가는 자기관리의 일부가 됐다.
이런 변화는 여러 생활문화에서 드러난다. ‘갓생’은 계획적으로 생활하며 성취감을 얻는 삶을 가리키고, ‘헬시 플레저’는 건강을 챙기면서도 즐거움을 놓치지 않는 태도를 말한다. ‘웰니스’는 몸과 마음의 건강을 함께 돌보는 생활 방식이며, ‘소버 큐리어스’는 술을 완전히 끊지는 않더라도 맨정신으로 보내는 시간과 음주를 줄이는 삶에 관심을 갖는 흐름이다.
몇 년 전에는 비싼 위스키나 골프처럼 과시적 소비가 주목받기도 했다. 그러나 유행이 지나면서 일부 젊은 소비자는 높은 비용이 드는 취미 대신 러닝처럼 비교적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운동을 선택하고, 도수가 높은 술 대신 무알코올 음료를 찾는다. 이런 변화는 단순히 특정 제품을 바꾸는 데 그치지 않고, 여가와 인간관계에서 술이 차지하는 비중 자체를 낮출 수 있다.
건강을 위한 생활 습관은 단기 유행보다 오래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 경기가 회복되더라도 소비자가 과거의 음주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돌아간다고 보기 어려운 이유다.
유명인 술 브랜드, 화제성이 지속적인 매출로 이어질까
유명인의 이름과 인지도를 활용하는 마케팅은 출시 초기 제품을 알리는 데 효과적일 수 있다. 팬들이 제품을 구매하고 사회관계망서비스에 경험을 공유하면 짧은 기간에 관심을 키우기 쉽다. 제품을 직접 기획하거나 사업에 투자하는 유명인도 늘면서, 단순 광고 모델을 넘어 브랜드의 주체가 되는 사례도 나타났다.
그러나 출시 직후의 품절이나 높은 관심이 장기적인 수요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박재범의 술로 알려진 원소주스피릿은 출시 3년 만에 매출이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초기 구매가 반복 구매로 이어지지 않거나, 제품이 계속 선택될 만한 차별점을 만들지 못하면 마케팅 비용을 들여도 성장세가 빠르게 약해질 수 있다.
유명인 브랜드가 안정적으로 자리 잡으려면 이름값 외에도 맛과 품질, 적절한 가격, 유통망, 소비자가 다시 찾을 이유가 필요하다. 특히 시장 전체가 줄어드는 상황에서는 경쟁 제품에서 소비자를 빼앗아 오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술을 마시지 않는 소비자까지 고려한 제품과 새로운 수익원이 요구되는 배경이다.
주류 부자재 기업이 화장품을 택한 이유
사업 다각화의 사례로는 하이트진로 박태영 사장이 최대주주인 서영이앤티의 움직임이 거론된다. 서영이앤티는 맥주 냉각기 등 주류 관련 부자재를 만들어 납품하던 회사다. 과거 계열사 지원을 둘러싼 사건으로 대법원 유죄 판결을 받은 바 있다.
이 회사는 자회사 진백글로벌을 통해 2024년 말 화장품 제조사 비앤비코리아를 인수했다. 비앤비코리아는 달바글로벌의 주요 제품인 달바 미스트를 생산하며, 연간 매출이 1,412억원에 이르는 회사로 소개됐다. 전통적인 주류 부자재 제조사가 본업과 다른 화장품 분야로 사업 영역을 넓힌 것이다.
이 인수의 목적을 하나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기업의 가치와 지배구조를 고려한 판단일 수도 있지만, 주류와 직접 관련이 없는 성장 산업에 진출해 수익원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으로도 읽힌다. 술을 중심으로 형성된 사업 생태계가 정체되는 동안 뷰티와 건강 관련 시장이 성장할 수 있다는 기대가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사업 다각화가 의미하는 것
사업 다각화는 한 제품이나 한 산업에만 의존하지 않고, 여러 분야에서 매출을 얻도록 사업을 넓히는 전략이다. 예를 들어 술 판매가 줄어들 때 무알코올 음료나 건강 관련 제품, 화장품처럼 다른 수요를 가진 상품이 새로운 매출원이 될 수 있다. 한쪽 시장이 흔들려도 다른 사업이 이를 보완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다만 새 산업에 진출한다고 자동으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기존 사업과 다른 기술과 유통망, 고객 이해가 필요하고, 인수 가격이 지나치게 높거나 운영 역량이 부족하면 오히려 부담이 커질 수 있다. 따라서 사업을 넓히는 것뿐 아니라 새 분야에서 경쟁력을 실제로 만들어내는지가 중요하다.
앞으로 주류업계가 살펴야 할 변화
주류업계가 직면한 과제는 단순히 광고를 더 많이 하는 데 있지 않다. 소비자가 술을 마시는 양과 이유가 바뀌는 만큼, 제품 구성과 판매 방식을 조정해야 한다. 무알코올 또는 저알코올 제품은 술을 줄이고 싶지만 맛과 음료 경험은 원하는 소비자를 겨냥할 수 있고, 새로운 종류의 음료는 기존 고객이 아닌 사람에게도 선택지를 제공할 수 있다.
업계가 고려할 수 있는 대응 방향은 다음과 같다.
- 무알코올·저알코올 제품군을 넓혀 음주량을 조절하는 소비자에게 선택지를 제공한다.
- 유명인 마케팅에만 의존하지 않고 제품의 품질과 재구매 이유를 강화한다.
- 주류 제조와 유통에서 축적한 역량을 활용해 인접 산업으로 진출한다.
- 지역 주류사는 지역의 역사와 맛을 살리면서 온라인·관광 등 새로운 접점을 찾는다.
- 매출뿐 아니라 영업이익과 재고, 지속적인 구매 여부를 함께 살펴 사업의 실질적인 체력을 점검한다.
주류업계의 침체는 술의 인기가 잠시 시들해진 현상이라기보다, 건강과 자기관리를 중시하는 생활 방식의 변화와 맞물려 있다. 유명인 제품의 단기 흥행만으로는 이 흐름을 되돌리기 어렵다. 소비자의 선택이 달라진 현실을 인정하고, 무알코올 제품과 새로운 산업 진출을 포함해 장기적인 사업 구조를 바꾸는 기업이 다음 시장에서 더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가능성이 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