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승에서 은메달…아시안게임 2회 연속 입상
한국 브레이킹의 베테랑 김홍열, 활동명 홍텐이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남자부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김홍열은 3일 일본 아이치현 도코나메의 아이치 스카이 엑스포에서 열린 결승에서 일본의 나카라이 시게유키, 활동명 시게킥스에게 0-3으로 패했습니다.
금메달은 놓쳤지만, 이번 은메달로 김홍열은 아시안게임에서 2회 연속 메달을 따냈습니다. 그는 2022 항저우 대회에서 정상에 올랐고, 이번 대회에서는 시상대 두 번째 자리에 섰습니다.
금메달을 향한 도전은 결승에서 멈췄지만, 김홍열의 아시안게임 메달 행진은 이어졌습니다.
점수가 공개되는 순간까지 이어진 춤 대결
브레이킹은 음악에 맞춰 춤 동작과 회전을 펼치고, 두 선수가 번갈아 무대를 주고받으며 실력을 겨루는 종목입니다. 일대일 대결에서는 정해진 순서에 따라 각자의 춤을 선보인 뒤 심판의 평가로 승자를 가립니다. 관중은 선수의 움직임뿐 아니라 음악에 반응하는 방식과 무대의 흐름에도 주목합니다.
결과 발표 전에는 진행자와 관중이 함께 숫자를 세고, 전광판에 두 선수의 점수가 한꺼번에 공개됩니다. 승패가 드러나는 짧은 순간까지 긴장감이 이어지지만, 대회장은 서로의 춤을 즐기고 환호하는 축제 같은 분위기도 띱니다.
김홍열은 결승 무대에서 특유의 회전과 힘 있는 동작을 선보였습니다. 관중의 큰 환호 속에 경기를 마쳤고, 경기 뒤에는 결승에서 느낀 아쉬움을 웃음으로 전했습니다.
금메달보다 먼저 세운 목표는 ‘즐기는 것’
김홍열은 앞선 항저우 대회에서는 다음 올림픽 출전권이 걸려 있어 이기는 데 집중하느라 무대를 충분히 즐기지 못했다고 돌아봤습니다. 이번에는 이미 한 차례 큰 대회를 경험한 만큼, 결과에만 매달리지 않고 춤과 관중의 반응을 온전히 느끼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그는 이번 대회에서 자신이 가장 많이 웃었을 것 같다며, 모든 것을 잠시 잊고 즐기겠다는 첫 번째 목표는 충분히 이뤘다고 말했습니다. 금메달을 따지 못한 아쉬움은 남았지만, 무대 자체를 즐겼다는 점에서 이번 대회는 그에게 다른 의미를 남겼습니다.
김홍열은 우승 여부와 별개로, 이번 대회에서 춤과 무대를 즐기겠다는 목표를 이뤘다고 밝혔습니다.
40대에도 이어진 준비…매일 훈련으로 무대에 섰다
1984년생인 김홍열은 대회 전 진천 국가대표선수촌에서 꾸준히 몸을 만들었습니다. 오전에는 근력 운동을 하고, 오후에는 춤을 연습했으며, 저녁에는 개인 훈련을 이어가는 일과를 소화했습니다.
브레이킹은 바닥에 몸을 짚고 회전하거나, 몸을 비틀고 빠르게 방향을 바꾸는 동작이 많은 종목입니다. 예를 들어 한 동작에서 몸의 무게를 팔과 어깨로 버티면서 다음 회전으로 이어가야 하므로, 춤 실력뿐 아니라 체력과 균형 감각도 중요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회복과 체력 관리가 더 큰 과제가 될 수 있어 김홍열에게 훈련은 무대를 이어가기 위한 준비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경기 뒤 “5년만 젊었어도 해볼 만했을 것 같다”고 말하며 결승의 아쉬움을 드러냈습니다. 그러나 나이를 이유로 도전을 멈추기보다, 준비를 이어가며 더 높은 수준의 무대를 보여주겠다는 마음으로 이번 대회에 나섰습니다.
친구들과 시작한 춤, 세계 무대의 정상으로
김홍열이 브레이킹을 시작한 것은 중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 처음에는 친구들과 어울려 춤을 추는 취미였지만, 춤을 통해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성장하는 경험이 쌓이면서 삶의 중요한 일부가 됐습니다.
그는 2002년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세계 대회에서 우승하며 이름을 알렸습니다. 세계적인 브레이킹 대회인 레드불 비씨 원 결승에서도 2006년과 2013년, 2023년 세 차례 우승했습니다. 오랜 기간 세계 무대에 서며 자신만의 춤을 다듬어 온 경험은 아시안게임에서도 그의 강점이 됐습니다.
김홍열은 2002년 첫 세계 대회 우승 때 느낀 감동과 성취감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아시안게임 출전 역시 선수 생활을 돌아볼 때 오래 기억에 남을 경험이라고 밝혔습니다.
세대가 바뀌어도 계속 배우는 이유
브레이킹의 춤 스타일과 유행은 세대에 따라 달라집니다. 젊은 선수들이 새로운 움직임과 표현을 선보이는 가운데, 김홍열은 자신의 방식만 고집하지 않고 어린 선수들의 춤을 배우는 일을 동력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는 요즘 흐름을 받아들이고 계속 배우는 과정이 재미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나이와 경력을 앞세워 변화를 거부하기보다, 새로운 방식을 익히는 태도가 오랫동안 현역으로 활동하는 데 도움이 됐다는 뜻입니다.
- 김홍열은 중학교 2학년 때 친구들과 춤을 추며 브레이킹을 시작했습니다.
- 2002년 한국 선수 최초로 세계 대회에서 우승했습니다.
- 레드불 비씨 원 결승에서 세 차례 정상에 올랐습니다.
- 항저우 대회 금메달에 이어 아이치·나고야 대회 은메달을 따냈습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도 새로 시작할 수 있다”
김홍열의 도전은 젊은 선수 중심으로 바뀌는 종목에서 나이와 경력이 반드시 한계를 뜻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그는 “늦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새로운 시작은 가능하다”는 사실을 자신의 도전으로 전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운동선수에게만 해당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에 너무 늦었다고 망설이는 사람도, 작은 연습부터 시작하고 익숙하지 않은 방식을 배우며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김홍열은 자신의 도전이 누군가에게 작은 용기와 희망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대회에서 그는 금빛 기운을 바라며 머리카락을 금발로 염색했지만, 결승 결과는 은메달이었습니다. 그래도 춤을 즐기고 무대를 즐기며 마지막에는 웃었습니다. 브레이킹을 보는 사람들이 잠시라도 웃고 에너지를 얻었으면 좋겠다는 그의 바람도 관중의 환호 속에 전해졌습니다.
은메달 이후에도 이어질 도전
김홍열은 결승에서 패한 뒤 5년만 젊었으면 승부를 더 해볼 수 있었을 것 같다며 아쉬움을 보였습니다. 동시에 대회 내내 무대를 즐겼고, 새로운 세대의 춤을 배우는 일이 자신을 계속 움직이게 한다고 했습니다.
그가 이번에 얻은 것은 메달만이 아닙니다. 첫 아시안게임 금메달 이후 다시 국제 무대에 올라 은메달을 따냈고, 나이에 맞서 훈련을 이어가는 모습으로 도전의 의미를 보여줬습니다. 41살 홍텐의 춤은 시상대에서 멈추지 않고, 다음 무대를 향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