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 데서 그치지 않는 모임

경기 안성의 시니어 독서 모임 ‘청미회’에는 60~70대 회원 10명이 참여한다. 이들은 2020년부터 한 달에 두 차례 모여 책을 소리 내 읽고, 읽은 내용과 각자의 경험을 나눈다. 책장을 넘기는 것뿐 아니라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문학관과 동네 책방을 찾아가고 어린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봉사도 한다.

회원들은 독서 모임을 통해 낯선 지역에서 인생의 다음 시기를 함께 살아갈 사람들을 만났다. 이들에게 책은 지식을 얻는 수단인 동시에 서로의 생각을 알아가는 매개가 됐다. 모임에서 쌓인 글과 그림을 선보이는 전시도 준비하고 있다.

청미회가 이어가는 것은 책 읽기만이 아니다. 함께 읽고, 이야기하고, 각자의 삶을 나누는 시간이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간다.

눈으로 읽고 귀로도 읽는다

모임이 열리는 날이면 회원들은 안성 일죽도서관에 모여 두 팀으로 나뉜다. 각 팀은 서로 다른 책을 골라 돌아가며 낭독한다. 한 회원은 허리가 아파 서서 읽기도 하고, 다른 회원은 책을 들고 일어나 읽는다. 몸이 불편하거나 집중이 흐트러지는 순간에도 자기 차례가 있다는 사실이 읽기를 이어가게 한다.

왜 혼자 조용히 읽는 대신 소리 내어 읽을까. 회원들은 낭독하면 졸 틈이 줄어들고, 다른 사람이 읽는 동안에는 귀로 내용을 따라가며 생각을 정리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한 회원은 낭독을 “귀로 하는 독서”라고 표현했다.

  • 내 차례를 기다리며 책에 집중한다.
  • 다른 사람의 목소리로 문장을 들으며 내용을 다시 살핀다.
  • 읽은 뒤 곧바로 느낌과 생각을 말로 나눈다.

혼자 책을 읽을 때는 지나쳤던 문장이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통해 새롭게 다가올 수 있다. 누군가 같은 구절에서 무엇을 떠올렸는지 들으면, 책의 의미가 개인의 경험과 연결되기도 한다.

서로 다른 책에서 출발한 대화

모임에서 함께 읽은 책에는 생태와 환경, 삶의 태도 등을 다룬 내용이 포함됐다. 한 회원은 여름철 더위로 자신이 기르는 소가 사료를 제대로 먹지 못하고 몸무게가 줄어든 일을 이야기하며 기후변화의 영향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책에서 얻은 문제의식을 비닐을 아껴 쓰고 다시 사용하는 생활 속 실천으로 이어가고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다른 회원들도 바이러스와 기후변화, 사람과 자연이 함께 살아가는 방식에 관한 생각을 보탰다. 대화는 누가 옳은지 가리는 격한 논쟁보다, 서로의 말을 듣고 경험을 나누는 방식으로 이어졌다. 같은 책을 읽어도 각자가 살아온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떠올리는 장면과 중요하게 보는 대목은 달라질 수 있다.


자식과 재산 대신 삶을 나누다

청미회 회원 상당수는 서울이나 인천 등 도시에서 살다가 안성으로 옮겨왔다. 농사나 가축 사육을 시작한 사람도 있고, 직장이나 가족을 따라 정착한 사람도 있다. 익숙한 생활권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삶을 다시 꾸리던 이들이 책을 통해 서로 연결됐다.

모임을 이끄는 조성일씨는 나이가 들면서 건강 문제뿐 아니라 외로움과 자신감 저하를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청미회에서는 자녀나 재산을 자랑하는 대신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누며, 함께 웃고 서로를 위로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말하고 다른 사람에게 존중받는 경험은 스스로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데도 힘이 될 수 있다.

“책을 함께 읽고 생각을 나누고, 많이 웃고, 서로 위로해 줘요. 그러다 보면 자존감이 높아지는 것 같아요.”

이 모임이 특별한 이유는 회원들이 언제나 같은 의견을 내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생각이 달라도 말할 기회를 얻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으려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일상에서 대화가 비슷한 관심사나 가까운 사람에게만 머물기 쉽지만, 함께 책을 읽으면 익숙하지 않은 주제를 두고도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다.


책 한 구절이 꺼내놓은 ‘혼자’라는 이야기

책 속 문장은 회원들이 평소 쉽게 꺼내지 못했던 마음을 말하게 하는 계기도 됐다. 한 회원이 인간은 결국 혼자라는 취지의 구절을 인상 깊게 읽자, 대화는 각자가 생각하는 ‘혼자’의 의미로 이어졌다.

퇴직 뒤에야 다른 사람에게 맞추며 살아온 시간을 돌아보고, 이제 자신을 돌볼 때 자유로움을 느낀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혼자 있는 시간이 편안하다는 회원도 있었지만, 혼자 죽음을 맞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처음으로 털어놓은 회원도 있었다. 같은 단어를 두고도 서로 다른 감정과 경험이 드러난 순간이었다.

이처럼 독서 모임은 정답을 제시하기보다 각자의 생각을 말로 꺼내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자리를 만든다. 개인의 사적인 고민을 가볍게 넘기지 않고 함께 바라보는 일은,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수십 년 함께 산 부부도 새롭게 알게 된 것

청미회에는 부부가 함께 참여하기도 한다. 최용석씨는 아내와 같은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누면서, 오랫동안 함께 살아온 사람의 가치관과 생각을 자신이 충분히 알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젊은 시절에는 목표를 이루는 데 집중하느라 곁에 있는 사람을 세심하게 살피지 못했다는 것이다.

같은 문장을 읽고 각자의 해석을 나누면 상대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부부 사이의 차이를 단순히 성격 탓으로 돌리기보다, 서로 어떤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지 알아가는 것이다. 이런 대화가 모든 갈등을 없애는 것은 아니지만, 상대를 더 잘 이해할 기회를 넓힐 수 있다.


나이 들수록 필요한 생각의 거울

회원들은 독서가 기억력과 집중력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도 이야기한다. 다만 낭독이나 독서가 치매를 예방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이 모임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책 읽기가 대화와 배움, 사람들과의 만남을 이어가는 일상 활동으로 자리 잡았다는 점이다.

함께 읽는 모임은 거창한 준비 없이도 시작할 수 있다. 같은 책을 고르고 정해진 시간에 만나 몇 쪽씩 돌아가며 읽은 뒤, 기억에 남은 문장이나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면 된다. 말을 잘하거나 책을 많이 읽어야 참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서로의 이야기를 평가하기보다 먼저 듣는 태도다.

  • 짧은 글이나 한 장부터 함께 읽는다.
  • 정답을 찾기보다 각자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나눈다.
  • 의견이 다르면 반박하기 전에 그 생각이 나온 경험을 묻는다.
  • 모임 뒤에 글쓰기, 그림 그리기, 지역 문화 공간 방문처럼 작은 활동을 이어간다.

청미회 회원 최용석씨는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생각에 갇히기 쉬워진다고 말했다. 그에게 독서 모임은 자기 생각을 들여다보고, 다른 사람은 세상을 어떻게 보는지 확인하는 ‘거울’과 같다.

자기 주장만 앞세우는 사람이 될지, 다른 사람의 생각에 마음을 열고 공감하는 어른으로 살아갈지. 청미회 회원들은 함께하는 독서가 그 선택에 영향을 준다고 말한다.

청미회의 이야기는 독서가 혼자만의 취미에 머물지 않고 관계와 공동체를 만드는 활동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나이가 들어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익숙한 생각을 돌아보고, 자신의 마음을 말로 표현하는 일은 작은 모임에서 시작될 수 있다. 책을 사이에 둔 대화는 삶의 속도를 늦추고 서로를 다시 바라보게 하는 기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