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미네이터’의 마지막 장면을 닮은 로봇 폐기
영화 ‘터미네이터 2: 심판의 날’에서 로봇 전사 티팔백은 임무를 마친 뒤 뜨거운 쇳물 속으로 내려가 자신의 부품과 흔적을 없앱니다. 이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일이 현실에서 벌어졌습니다. 미국의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사 피겨AI가 구형 로봇을 주조 공장의 전기로에 투입해 녹이는 과정을 영상으로 공개했습니다.
영상 속 로봇은 용광로 앞까지 이동한 뒤 스스로 뛰어내립니다. 다만 이는 로봇이 죽음을 결심하거나 상황을 이해해 자발적으로 희생한 일이 아닙니다. 회사가 미리 훈련시킨 동작을 수행하도록 한 것으로, 영화 속 인공지능의 의지와 실제 로봇의 행동은 구분해야 합니다.
로봇은 용광로에 들어가는 동작을 수행했지만, 그 행동에 사람처럼 의도나 감정이 있었다고 볼 근거는 없습니다.
새 모델 등장에 따라 단종된 구형 로봇
이번 폐기 대상은 피겨AI의 휴머노이드 로봇 에프공이 모델입니다. 회사가 신형 모델 에프공삼과 에프공사를 개발하면서 구형 기종을 단종하기로 했고, 기존 로봇을 어떻게 처리할지 검토하는 과정에서 용광로 폐기 방식이 선택됐습니다.
에프공이는 키 약 170센티미터인 사람 형태의 로봇입니다. 회사는 이 기종을 가정과 물류 작업을 염두에 두고 개발했으며,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스파르탄버그의 자동차 공장에서는 용접 공정에 쓰이는 판금 부품을 옮겨 끼우는 업무를 맡겼다고 설명했습니다.
로봇을 일반적으로 해체하려면 부품을 하나씩 분리하고 재료별로 분류해야 합니다. 이 과정은 시간과 인력이 많이 들 뿐 아니라, 로봇의 내부 구조나 설계 정보가 외부에 드러날 가능성도 있습니다. 특히 독자 기술이 담긴 제품이라면 폐기 과정 자체가 기술 보호와 보안 문제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해체 대신 녹이는 방안이 나온 배경
회사는 로봇을 처리할 방법을 공개적으로 제안받았습니다. 영화에서 티팔백을 연기한 배우 아널드 슈워제네거가 로봇을 영화처럼 녹이는 방안을 제안했고, 피겨AI는 실제로 이 방법을 실행할 수 있는 주조 공장을 찾아 나섰습니다.
고철을 녹이는 전기로는 금속을 높은 온도로 가열해 다시 녹이는 설비입니다. 전기로에 금속 제품을 넣으면 재료를 녹여 재활용할 수 있지만, 제품 안에 배터리나 전자 부품이 들어 있다면 화재나 폭발 위험을 먼저 따져야 합니다.
배터리 위험 때문에 공장들이 거절
미국과 멕시코의 여러 주조 공장은 로봇에 들어 있는 리튬이온 배터리(충전해 반복해서 쓰는 배터리)의 폭발 위험을 이유로 작업을 맡지 않았습니다. 배터리는 열이나 충격을 받으면 불이 나거나 압력이 높아질 수 있어, 일반 금속 폐기물과 같은 방식으로 다루기 어렵습니다.
결국 작업을 받아들인 곳은 핀란드 이마트라에 있는 한 주조 공장이었습니다. 피겨AI가 밝힌 영상 제작 과정에 따르면 전기로를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24시간 동안 모두 여섯 차례였고, 한 차례 용융 시간은 약 20분이었습니다. 제한된 시간 안에 작업을 끝내야 했기 때문에 로봇이 공장 환경에 맞춰 움직이도록 사전 연습을 진행했습니다.
실제 공장에 가기 전 반복 훈련
로봇들은 미국 본사에서 스턴트 연기자들의 동작을 참고해 만든 훈련 모델로 연습했습니다. 이전에 가본 적 없는 공장에서도 정해진 위치와 경로를 따라 움직일 수 있도록, 건물 2층에서 1층의 에어백으로 뛰어내리는 훈련을 반복했다고 회사는 설명했습니다.
이런 훈련은 로봇이 낯선 장소에서도 몸의 균형과 이동 경로를 조정하도록 돕는 방식입니다. 예를 들어 사람이 새로운 방에서 장애물을 피해 걷는 법을 익히듯, 로봇도 반복 연습을 통해 특정 동작을 수행하도록 조정될 수 있습니다. 이번 사례에서 확인되는 것은 훈련된 동작의 실행이지, 로봇이 스스로 폐기 방식을 선택했다는 사실은 아닙니다.
녹인 금속은 기념품으로 가공 중
피겨AI는 폐기된 로봇에서 나온 금속을 미국 본사로 가져왔으며, 이를 한정판 기념품으로 가공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회사는 공개한 영상이 컴퓨터그래픽이나 인공지능으로 만들어낸 장면이 아니라, 로봇들이 실제 전기로에 뛰어드는 모습을 촬영한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제안자인 슈워제네거도 영상에 직접 출연했습니다.
이 방식은 로봇을 부품별로 분해하는 대신 한꺼번에 녹였다는 점에서 폐기 과정을 간소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금속을 녹이는 것만으로 모든 정보가 자동으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며, 배터리와 회로 등 위험 요소를 어떻게 처리했는지와 환경·안전 기준을 지켰는지도 중요합니다. 공개된 내용만으로는 구체적인 안전 절차나 폐기 비용을 비교하기 어렵습니다.
- 기술 보호: 로봇을 분해하는 과정에서 내부 설계와 부품 정보가 노출될 가능성을 줄이려는 목적이 있습니다.
- 작업 간소화: 여러 부품을 하나씩 해체하고 분류하는 부담을 줄일 수 있습니다.
- 안전 문제: 배터리와 전자 부품이 고온 환경에서 어떤 위험을 일으킬 수 있는지 사전 검토가 필요합니다.
- 재료 활용: 녹인 금속을 다시 가공할 수 있지만, 재활용의 범위와 환경 영향은 별도로 살펴야 합니다.
‘멋진 영상’과 ‘불편하다’는 반응
공개된 영상에 대한 반응은 크게 갈렸습니다. 일부는 영화의 장면을 현실에서 재현한 홍보가 인상적이고 시각적으로 강렬하다고 평가했습니다. 반면 로봇이 마치 자기 자신을 용광로에 던지는 것처럼 보이는 모습이 소름 끼치거나 불편하다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이런 반응은 로봇을 단순한 기계로 볼지, 사람과 비슷한 존재로 느낄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사람처럼 걷고 뛰는 휴머노이드 로봇은 실제로 감정이나 자아가 없더라도, 관객에게 의도와 고통이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로봇의 행동을 보여주는 영상에서는 실제 기능과 연출이 어디까지인지 분명히 설명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산업 현장으로 넓어지는 휴머노이드 활용
휴머노이드 로봇은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공장과 창고의 통로, 작업대, 도구를 활용할 수 있다는 기대를 받고 있습니다. 자동차 공장처럼 반복적이고 위험 부담이 있는 환경에서 부품을 옮기거나 정해진 작업을 수행하면, 사람의 업무를 보조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실제 현장에 투입하려면 안전성, 유지보수 비용, 작업 정확도와 함께 로봇의 수명이 다한 뒤 처리하는 방법도 마련해야 합니다.
이번 사례는 로봇의 성능뿐 아니라 제조부터 사용, 폐기까지 이어지는 전체 과정이 산업의 과제가 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앞으로 로봇이 더 많이 보급되면 오래된 기종의 부품 재사용, 배터리 분리, 재료 회수와 기술 정보 보호를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영화 같은 장면 뒤에는 안전한 폐기 절차와 책임 있는 자원 관리가 필요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