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 행정청의 낯선 고민
서울의 한 구청에서 오래 일한 김서윤 과장은 관내 사업장에 부담금을 부과하는 업무를 맡고 있었습니다. 구청은 해당 법률 조항에 따라 처분을 했지만, 법률이 정한 부과 기준이 헌법에 어긋날 가능성이 있다는 의문이 내부 검토 과정에서 제기됐습니다. 그렇다고 행정청이 스스로 법률을 위헌이라고 판단해 적용하지 않을 수도 없었습니다.
부담금을 부과받은 사업자는 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소송을 냈습니다. 재판이 시작되자 구청은 처분의 근거가 된 조항에 대해 법원에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했습니다. 법원은 그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서윤 과장은 다음 선택지를 두고 고민했습니다. 국가기관은 기본권의 주체가 아니므로 헌법소원을 낼 수 없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서윤 과장이 검토해야 할 것은 기본권 침해를 다투는 헌법소원만이 아니었습니다. 재판의 전제가 된 법률 자체의 위헌성을 다투는 절차가 따로 있었습니다.
2. 법적 질문
국가나 국가기관은 국민처럼 기본권의 주체가 아니므로 헌법소원을 청구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행정청도 법원의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이 기각된 뒤,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2항에 따른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없을까요?
3. 한국 법은 어떻게 규정하고 있나
헌법소원이라는 이름은 같아도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과 제2항은 목적과 요건이 서로 다릅니다. 두 절차를 구분하는 것이 답의 출발점입니다.
제68조 제1항 헌법소원은 공권력의 행사나 불행사로 기본권을 침해받은 사람이 그 침해를 다투는 절차입니다. 국가와 국가기관은 원칙적으로 기본권을 보장해야 하는 지위에 있으므로, 국민과 같은 의미의 기본권 주체로 인정되지 않습니다.
제68조 제2항 헌법소원은 구체적인 재판에서 적용될 법률의 위헌 여부를 다투는 절차입니다. 법원에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했으나 기각당한 재판 당사자가 그 법률의 위헌 여부에 관해 헌법재판소의 심판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2항 헌법소원에서 핵심은 청구인이 기본권의 주체인지가 아닙니다. 다음 요건을 갖추었는지가 중요합니다.
- 법률의 위헌 여부가 구체적인 재판의 결론에 영향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 재판 당사자가 해당 법률에 대해 법원에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해야 합니다.
- 법원이 그 신청을 기각해야 합니다.
- 기각 결정을 받은 당사자는 법정 기간 안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해야 합니다. 통상 제68조 제2항에 따른 청구 기간은 기각 결정을 통지받은 날부터 30일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당사자’에는 민사·형사 재판의 당사자뿐 아니라 행정소송의 당사자도 포함됩니다. 행정청이 행정소송에서 피고가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당사자 범위에서 빠지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행정청은 행정처분을 내리는 단계에서 근거 법률을 자의적으로 위헌이라고 판단해 적용을 거부할 수 없습니다. 법률이 헌법에 어긋나는지 최종적으로 심판할 권한은 헌법재판소에 있고, 법률을 집행하는 행정청이 스스로 그 효력을 무시하는 것은 권력분립의 원칙과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처분의 적법성을 심리하는 재판에서는 그 처분의 근거가 된 법률이 헌법에 맞는지도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4. 한국 법원은 이 문제를 어떻게 보나
헌법재판소는 제68조 제1항과 제2항을 서로 다른 절차로 보아 왔습니다. 제1항은 기본권 침해를 구제하는 절차이므로 기본권 주체성이 청구 자격의 핵심입니다. 반면 제2항은 재판에서 적용될 법률에 대한 구체적 규범통제 절차입니다. 법률이 재판의 전제가 되었는지, 제청 신청이 기각되었는지가 중심이 되며, 기본권 침해 자체가 별도의 요건은 아닙니다.
행정청도 행정소송의 당사자라면 법률의 위헌 여부에 대한 제청을 신청할 수 있고, 신청이 기각된 경우 제68조 제2항 헌법소원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행정처분의 근거 법률도 재판에서 심판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원칙은 행정청이 처분 단계에서 법률을 거부할 권한이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행정청은 법률을 집행해야 하지만, 그 법률을 근거로 한 처분이 소송으로 다투어지는 단계에서는 법원에 위헌심판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법원이 제청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법이 정한 요건에 따라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구할 수 있습니다.
5. 서윤 과장의 사건에 적용해 보면
첫째, 구청은 사업자가 제기한 행정소송의 당사자입니다. 행정소송에서 피고가 된 행정청도 제68조 제2항의 ‘당사자’에 포함될 수 있으므로, 국가기관이라는 이유만으로 청구 자격이 당연히 부정되지는 않습니다.
둘째, 문제의 법률 조항이 구청 처분의 근거라면 그 조항의 위헌 여부는 재판 결과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습니다. 법률이 위헌으로 판단되어 적용될 수 없다면 처분의 적법성 판단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해당 조항이 재판의 결론과 무관하다면 제68조 제2항 헌법소원의 요건을 충족하기 어렵습니다.
셋째, 구청은 먼저 소송을 맡은 법원에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해야 합니다. 서윤 과장이 내부적으로 법률의 위헌성을 의심하거나 행정청이 헌법재판소에 곧바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만으로는 이 절차가 시작되지 않습니다. 이 사건에서는 구청이 신청을 했고 법원이 기각했으므로 다음 절차로 나아갈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됐습니다.
넷째, 구청이 헌법재판소에 청구할 때는 단지 “국가기관도 헌법소원을 낼 수 있다”는 주장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해당 조항이 왜 재판의 전제가 되는지, 어떤 헌법 원칙에 어긋난다고 보는지, 법원의 제청 신청 기각과 청구 기간 등 절차 요건을 충족했는지를 구체적으로 밝혀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청구 자격이 인정될 수 있다는 것과 법률이 실제 위헌이라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헌법재판소가 청구를 심리할 수 있다고 보더라도, 본안 심사에서 해당 법률이 합헌이라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위헌 여부를 가리기 위해 심판을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보더라도 그 자체로 구청의 처분이 자동 취소되는 것은 아닙니다. 처분의 효력은 행정소송의 판단과 헌법재판소 결정의 내용에 따라 정리됩니다.
6. 결론: 서윤 과장은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서윤 과장의 구청은 국가기관이므로 제68조 제1항에 따라 국민의 기본권 침해를 주장하는 헌법소원을 청구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구청은 행정소송의 당사자로서 처분의 근거 법률이 재판의 전제가 된 상황에서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했고, 그 신청이 기각됐습니다. 따라서 구청은 제68조 제2항에 따라 헌법재판소에 해당 법률의 위헌 여부를 심판해 달라고 청구할 수 있습니다.
다만 구청이 행정처분 단계에서 법률의 적용을 임의로 거부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헌법소원 청구가 받아들여질 가능성도 법률의 위헌성을 입증하는 문제와는 구별됩니다. 서윤 과장은 처분을 법에 따라 집행하면서, 소송 안에서 법률의 위헌성을 정식으로 다투는 절차를 밟아야 합니다.
비슷한 상황에 놓였다면 다음을 기억하세요.
- 제68조 제1항과 제2항을 구분하세요. 기본권 침해를 다투는지, 재판의 전제가 된 법률의 위헌성을 다투는지에 따라 청구 요건이 달라집니다.
- 재판과의 관련성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세요. 해당 법률이 사건의 결론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위헌 판단이 왜 필요한지 정리해야 합니다.
- 절차와 기한을 놓치지 마세요. 먼저 법원에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하고, 기각된 경우 결정 통지일과 30일의 청구 기간을 확인해 신속히 대응해야 합니다.



















